퇴근 후 자기 개발을 꼭 해야할까?(feat. 쩝쩝LAB)

퇴근 후 프로젝트로 파생되는 것들에 대한 정리
퇴근 후 자기개발을 꼭 해야 할까?
결혼 후에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자기 개발이 왜 필요한지, 그럼 언제 어느 정도로 시간을 할애하면 좋은지 고민하던 중에 조승연 작가의 탐구생활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로 영상이 올라왔다. 그리고 작년 2024 우아콘에서 나는 ‘퇴근 후 프로젝트’가 개발자에게 어떤 이로운 것을 가져다주는지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영상도 다시 보고 퇴근 후 자기 개발을 적절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정리해보았다.
성장과 흥미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순환의 고리
나는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속적인 성장’이라 생각한다. 그 성장은 결국 ‘지속적인 흥미’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그럼 ‘지속적인 흥미’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
‘지속적인’과 ‘흥미’를 분리해보자. ‘지속적인’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고, ‘흥미’는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관심에 가깝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면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관심을 가지고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하는, 어떠한 것’이 된다. 나는 이걸 줄여서 ‘개인적인 관심사와 관련 있는 프로젝트’라고 여긴다.
개인적인 관심사로부터 출발한 흥미를 프로젝트의 형태로 옮겨 담으면, 우리는 그것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꿔낼 수 있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반복적인 몰입과 실험의 경험은 개발자로서의 성장으로 직결되며, 그렇게 다시 새로운 흥미와 마주하게 되는 순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나에게 있어서 흥미란, 언제 어디서든 맛집을 찾고 기록하며, 그 지도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행위였다. 이 단순한 흥미를 더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해, 나는 2024년 10월 말부터 ‘쩝쩝LAB’이라는 퇴근 후 연구 프로젝트를 개설했고, 나처럼 맛집을 좋아하고 추천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쩝쩝LAB: 나의 흥미에서 출발한, 지속 가능한 성장 실험실
우리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모두의 연구소’라는 곳에서 모여, 맛집 추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추천시스템의 평가방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취향과 상황을 대변하는 데이터는 어떻게 만들고 모델은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지, 사용자 시나리오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등 실전 프로젝트 못지않은 과제를 다룬다.
그 주어진 시간 외에도 우리는 각자의 작업을 GitHub을 통해 소통한다. Discussion에 아이디어와 그 후속을 정리해 공유하고, PR을 통해 코드리뷰를 주고받으며, 프로젝트의 결을 조금씩 다듬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가진 전문성은 자연스럽게 교류되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동료의 시선과 피드백으로 보완된다.
조승연 작가가 말한 ‘진짜 자기개발’
최근에 본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영상 “자기개발 안 하면 시간낭비다?”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들었다. 그는 영상에서 ‘자기개발’이라는 말을 단순한 스펙 쌓기나 자격증 취득으로 보지 않고, 라이프스킬, 문화자생력, 그리고 성격자산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라이프스킬이란, 스스로 먹고 사는 능력이고, 문화자생력은 스스로 의미 있는 놀이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며, 성격자산은 다른 사람이 나와 일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태도라고 했다.
이 세 가지 개념을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쩝쩝LAB의 지난 몇 달이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함양해주었는지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 라이프스킬 –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설계하는 힘
쩝쩝LAB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흥미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직접 실험의 방향을 정하고 각자 필요한 것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리뷰 데이터를 어떻게 전처리할지, 어떤 감성 분석 기법을 적용할지, 추천 방식은 어떤 구조가 좋을지 등은 모두 우리가 스스로 정의한 질문이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스스로 먹고 사는 능력인 라이프스킬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역량이라고 느낀다.
🎭 문화자생력 – 스스로 판을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능력
쩝쩝LAB은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잠깐 떠오른 아이디어를 함께 실현해보는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맛집을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취향과 상황이라는 다층적인 변수들을 고려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누가 정해준 문제 대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놀이판에서 논다.
‘이건 내가 꼭 해보고 싶은 방식이야’라는 욕망이 실험으로 이어지고, 서로 다른 영역의 실험들이 맞물려 한 편의 공동 작업으로 흘러갔다. 남이 짜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규칙을 실험하는 이 구조야말로 문화자생력이 아닐까.
💬 성격자산 – 전문성을 나누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법
쩝쩝LAB을 통해 가장 크게 체감한 성장 중 하나는, 바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내가 작업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 다른 사람의 코드나 방식에 열린 태도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은 단순한 협업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이 곧 나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언어화하는 훈련이 되었다.
조승연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쌓이는 역량을 ‘성격자산’이라 불렀고,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나와 일하고 싶게 만드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기술 이상의 무기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지속적인 흥미와 성장의 순환 고리
흥미에서 출발한 쩝쩝LAB이라는 퇴근 후 프로젝트는, 어느새 나에게 개발자로서 가장 중요한 ‘리듬’을 만들어주었다. 이 리듬은 단순히 코딩 실력 향상에 그치지 않고, 코딩에 대한 자신감과 꼼꼼함, 내가 만든 시스템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실감, 그리고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까지 가져다주었다.
업무에서 개발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퇴근 후 프로젝트에서 작은 성취를 얻으면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탐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빠른 이 분야에서 메타인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퇴근 후에 꼭 자기개발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더 이상 ‘해야 한다’는 강박 대신, ‘그 시간에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곧 자기개발’이라 생각한다.